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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제국의 멸망… 역사로부터 배우는 교훈

추상(秋霜)논객 이상일의 ‘일침’

기사입력 2019-05-19 오후 1:26:1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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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플 공성전 상상도. (출처: 예로우의 블로그_콘스탄티노플의 함락)

 

[SNS 타임즈] 베네치아, 제노바, 러시아 어디서도 기다리는 구원군은 오지 않았다. 의지할 데는 기도뿐, 기도 소리와 대성당의 종소리, 오스만군의 진군을 알리는 악기 소리, 군인과 시민들의 비명이 뒤섞인 가운데 비잔틴 제국은 마지막 숨을 거둔다.

 

이것이 콘스탄티노플의 최후였다.

 

이처럼 한 국가가 무너지는 것은 여러 원인과 쌓인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망국은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 조그마한 사건으로 쓰나미처럼 덮쳐버린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 2년이 경과했다. 작금의 국론 분열은 이전 어느 정권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심각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17 5월 취임사에서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 (자료 사진= SNS 타임즈)

 

"~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 5 10, 이날은 진정한 진정한 국민의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

 

"~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도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적폐 청산(타겟이 이전 보수정권 이므로 야권에서는 정치보복이라고 비난)과 편가르기 식 정치 등으로 동서 지역 갈등은 더욱 악화됐다. , 대북 정책을 놓고 진보·보수 진영 간 갈등은 위험한 수준에 이르며, 세대 갈등과 남녀 갈등, 빈부 갈등 등 국가를 어떻게 통합해야 할지 해답을 찾기가 어려운 지경에 도달했다.

 

요즘 북한의 핵폭탄과 ICBM실험 성공으로 전세계가 한반도를 최고 위험지역으로 바라보는 상황에서 우리 정치권과 국민들은 첨예한 진보 보수진영으로 분열되며 이전투구 수준의 정쟁에 몰두하고 있는 지경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설마 전쟁이 날까? 같은 민족인데 설마 우리에게 핵무기를 사용하려고?”와 같은 안이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660여년전의 비잔틴제국의 멸망이 우리민족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멸망 당시 비잔틴 제국은 국민들의 분열과 사기 저하, 국가를 위한 애국심이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사소한 사건으로 1000년 제국이 무너지는 사례를 보면, 국가의 멸망이 순식간에 다가온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AD 313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AD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 기독교를 국교로 결정한다.

 

그로부터 3년후 로마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됐다동로마와 서로마는 종교상의 이유로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다동로마의 종교는 현재 동유럽에서 믿고 있는 동방정교(Eastern Orthodox Church)이고서로마의 종교는 현재 서유럽과 남아메리카에서 믿고 있는 로만 카톨릭(Roman Catholic)이기 때문이다.

 

서로마는 AD 476년에 남하하는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되기에 이르렀고동로마는 천년 가까이 유지되다가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멸망됐다.  

 

동로마(비잔틴)제국의 멸망은 세계사적으로 동양서양, ‘이슬람기독교를 눌렀던 문명사적 대사건으로 해석한다

 

동로마는 6~8 세기에 비잔틴 제국으로 바뀐다사실 동로마와 비잔틴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일반적으로 로마적인 속성이 강하면 동로마그리스적 속성이 강하면 비잔틴이라고 불린다최초 그리스인 황제 헤라클리우스 이후를 비잔틴으로 부른다.

 

콘스탄티노플(현재 터어키 이스탄불)을 수도로 했던 비잔틴 제국은 610년에서 1453년까지 1000년 가까이 생존했던 진정한 천년 왕국이었다

 

비잔틴 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감안하면 이 수명은 놀랍다왕국이 자리한 위치가 동서 문명의 교차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콘스탄티노플은 중세 유럽과 중동을 통틀어 1000년간 가장 화려하고 부유한 도시였다성소피아 성당만해도 천정 내부는 온통 금과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이 비잔틴 제국을 1000년 동안 사수한 일등 공신이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이라고 불린 콘스탄티노플 성벽이었다성벽의 길이는 22.5 Km에 달하며성벽 앞에는 항상 물이 차 있는 폭 18m의 커다란 해자가 있다성벽의 높이는 내벽이 7.5 m, 두께는 2 m이다외벽은 높이가 12 m, 두께가 5 m였다.

 

호전적이고 자신만만한 부족이 콘스탄티노플에 쌓여 있는 부()를 노리고 왔다가 성벽을 보고는 질려서 공격을 포기하고 돌아간 경우도 많았다.

 

콘스탄티노플에는 평균적으로 40만명전성기에는 70만명이 살았다이 위대한 도시는 지하에 수조를 만들어 이 엄청난 인구가 3년을 버틸 물이 언제나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성을 포위해서 항복을 받아 내기도 불가능했다

 

콘스탄티노플은 삼각형의 반도였기 때문에 성벽을 포위해도 해군만 건재하면 바다를 통해 얼마든지 보급을 유지할 수 있었다

 

비잔틴 제국도 이 사실을 알고 바다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찾아냈다이것이 그 유명한 ‘그리스의 불이다그리스의 불은 화염 방사기처럼 가연성 액체를 발사하고 불을 붙이는 장치로, 이 화합물은 물을 부어도 꺼지지 않고 바다 위에서도 탔다. ‘그리이스 불이라는 비밀 무기가 비잔틴이 바다를 지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런 이유로 거대한 돌 벽과 불로 보호되는 콘스탄티노플을 고립시키려면 최소 10만명 이상의 지상군과 화염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삼각형의 양쪽 항구를 제압할 수 있는 압도적인 함대가 필요했다그러나 이런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는 그 당시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견고하고 부유했던 비잔틴 제국이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15세기에 들어서며 광대한 영토는 거의 상실하고 콘스탄티노플과 그리스마케도니아 일대에 약간의 도시만 남았다이때 사라센 제국을 격파하고 중동의 패권을 쥔 오스만 제국이 비잔틴 제국을 공격 목표로 삼았다.

 

사실 오스만 제국과 비잔틴 제국간의 전투 이전에 전세(戰勢)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콘스탄티노플을 제외한 발칸 지역은 오스만의 영향력 아래로 넘어간 지 오래고, ‘튀르크군 1만명보다 기독교 병사 100명의 행군이 더 시끄럽다고 할 정도로 비잔틴 제국의 군기(軍紀)는 엉망이었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당나라 군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200년전 이탈리아 도시국가 베네치아의 사주를 받은 제4차 십자군의 침략으로 노략질 당한 콘스탄티노플은 아직도 복구가 덜 된 상태였다

 

끊임없는 내분과 갈등 때문에 황제는 정식 대관식도 못 올렸다설상가상으로 당시 최첨단 무기였던 대포를 만드는 기술자가 요구하는 돈을 지불하지 못해 오스만군으로 넘어가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두 제국간의 전쟁에는 '비잔틴 제국 황제 5년차' 40대 중반의 콘스탄티누스 11세와 '오스만 제국 술탄 10년차' 21세 청년 메메드 2, 두 사나이의 사생결단 대결이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원군은 아직 오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어딘가 오고 있거나 출발 준비를 서두르고 있을 것이다그렇게 믿자"(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11).

 

"그 도시를 나에게 달라그러면 성 밖 다른 도시를 그대에게 주겠노라"(오스만 투르크 술탄 메메드 2).

 

1453 4월 오스만 투르크의 메메드 2세는 눈에 가시 같던 비잔틴 제국을 끝장내기로 결심했다. 메메드 2세는 겨우 22세였지만 비범하고 걸출한 군주였다그는 역사에 남는 정복자의 공통점을 골고루 갖추었다. 과감한 결단력, 추진력상상력그리고 냉혹함 이었다

 

그는 불구자인 동생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별명이 흡혈귀였을 정도였다.

 

그런 메메드 2세에게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쉽지 않았다성벽은 여전히 난공불락이었고콘스탄티노플의 동쪽 지협은 강력한 쇠사슬로 방비돼 선박의 돌입이 불가능했다.

 

길이 8.2 m 600 Kg 포탄을 날리는 대포 제조기술을 갖고 있는 기술자 우르반이 보수를 받지 못하자 메메드 2세 진영으로 넘어서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공성용 대포를 만들어 주었다

황소 60마리가 끄는 이 대포의 포탄은1.6 Km까지 날아갔다

이 괴물 대포가 성벽을 부쉈지만 1대 뿐이었고 하루에 7번 밖에 발사할 수 없어서 오스만 군의 침공 진입로를 내기가 역부족이었다.

 

당시 최첨단 무기들이 총출동하고첩보전과 심리전도 동원된다바닷길이 막힌 술탄은 언덕에 레일을 깔고 전함 72척을 끌어올려 내해(內海)로 진입시킴으로써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을 수사(修辭)가 아닌 현실로 바꿔 놓았다.

 

메메드 2세는 전쟁사에 길이 남을 기발한 작전을 쓰는데쇠사슬 차단선을 돌파하기 위하여 전함을 들어서 산을 넘어서 차단선 안쪽 바다로 내려놓은 것이다전함을 바퀴 달린 통나무 발판 위로 옮긴 후 이 발판에 밧줄을 걸고 수천 마리 소로 잡아 당겼다속담처럼 ‘배가 산으로 올라간’ 것이다그러나 이 전함들도 비잔틴 제국의 숨통을 끊지는 못했다.

 

땅굴 10여개를 파서 해자와 성벽 아래로 기어오는 술탄의 군대를 비잔틴 황제는 역땅굴로 무력화시킨다.

 

보통 군주라면 이 정도에서 멈췄겠지만 메메드2세는 포기하지 않았다모든 방법이 좌절되자 그는 엄청난 희생이 따르는 성벽으로 직접 돌격하는 정공법을 택했다공격 예정일은 528일이었다.

 

5 27일밤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성벽을 따라 걸으며 오스만의 군의 진지를 내려다보았다다음날 대공세는 이미 감지되었고내일 싸움에서 이기든 지든 그것이 마지막 전투임은 분명했다

 

젊은 황제는 용감한 기사였으며다른 것은 몰라도 장군으로서는 능력과 리더십을 보유한 인물이었다황제는 한숨을 쉬며 측근들에게 진심을 털어놓았다.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것은 신의 도움 밖에 없다” 황제의 한탄에는 이유가 있었다. 22.5 Km에 달하는 거대한 성벽을 지킬 수비대가 7천명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 당시 콘스탄티노플에는 10만명의 시민이 있었으므로 병사가 최소 2만명을 되어야 하였지만 그러지 못했다그나마 대부분이 오스만투르크의 침공에서 기독교 제국을 구하고자 유럽에서 온 의용병(4천명)들이었다개개인의 전투력은 높았지만병력의 수는 절대 열세였다.

 

5 28일 아침 메메드 2세가 정예병을 투입하며 총공세를 가해왔다버틴 것만해도 기적이었다오늘 이 공격만 막아내면메메드 2세도 내일 다시 공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수비대 용사들이 틈만 나면 성문 쪽문을 열고 오스만 병사를 기습하고 들어오곤 했다그런데 기습 공격을 하고 난 후 너무 피곤해서인지 한 부대가 실수로 성문을 잠그는 것을 잊었다.

 

오스만 병사가 이 사실을 발견하고 성문으로 들어와 성벽에 깃발을 세웠다오스만군이 쇄도하기 전에 수비병이 열린 문을 발견하고 바로 문을 잠갔다성안으로 들어온 오스만군은 고립되었고공격을 피해 성벽을 따라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 해프닝이 발발하기 직전에 오스만군이 발사한 포탄이 제노바 출신으로 의용병을 지휘하던 주스티아노를 맞췄다그는 수성 전문가로 지금까지 수비대의 용전을 이끈 최고의 공로자였다

 

하지만 부상을 당하는 순간 마음이 약해졌는지 주스티아노는 옆에 있는 황제에게 내벽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자기를 항구에 있는 제노바 함선으로 후송해달라고 요구했다결정적인 순간이었지만 황제도 마음이 약해졌다

 

아무튼 외국인이었고 지금까지 버틴 것은 그의 공이었다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실수였다.

 

부상당한 주스티아노가 문을 열고 빠져나가는 모습을 본 제노바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주스티아노는 몇일 후 사망했으며 한순간의 나약함으로 영웅에서 역적으로 추락했다.

 

하필 이때 성벽에 오스만군의 깃발이 올랐고수비대에 쫓긴 오스만 병사들이 이곳으로 도망쳐왔다

 

지휘관(주스티아노)이 갑자기 탈출하고성벽에 적군의 깃발이 오르며 오스만군이 몰려오자 전후 사정을 모르는 제노바 병사들이 주스티아노가 열고나간 문으로 미친듯이 도망가기 시작했다공황이 발생하자 누구도 제어할 수 없게 됐다.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최후가 왔음을 알고옆에 있던 두명의 기사와 함께 쏟아져 들어오는 오스만군을 향해 돌진했다난전을 벌이다가 전사한 그는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

 

베네치아제노바러시아 어디서도 기다리는 구원군은 오지 않았다의지할 데는 기도뿐기도 소리와 대성당의 종소리오스만군의 진군을 알리는 악기 소리군인과 시민들의 비명이 뒤섞인 가운데 비잔틴 제국은 마지막 숨을 거둔다.

 

이것이 콘스탄티노플의 최후였다

 

한때 신이 이 도시에 머무르고 싶을 것이라고 불리던 아름답고 성스러운 도시는 지옥으로 변했다도시 전체에서 미친 듯한 약탈과 방화살인강간이 자행됐다

 

시민들은 최후의 기적을 바라며 성소피아 성당으로 몰려들었다하지만 도시의 고귀한 사람 전부가 그곳에 있음을 알아차린 오스만군도 성당으로 몰려왔다그곳에서도 똑 같은 피의 제전이 벌어졌다.

 

포위가 지속된 1달 반 동안 콘스탄노플의 시민들은 사역이나 조금 도왔을 뿐 성당에서 울부짖고만 있었다. 그 와중에서 종교 교파간 분쟁으로 성소피아 성당에서는 교파별로 돌아가면서 예배를 드렸다교파가 화합해 연합 예배를 드린 것은 최후의 공세가 감행되기 전날인 27일 딱 하루였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부유하고 화려했던 도시콘스탄티노플의 최후가 남긴 교훈은 현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과 민족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이처럼 한 국가가 무너지는 것은 여러 원인과 문제가 쌓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망국은 단계적으로 진행되는게 아니라 한순간 조그마한 사건으로 쓰나미처럼 덮쳐버린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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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논설고문 (editor@sns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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